무지개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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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로 살아가

 

곽 이 경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 성문밖교회 교인)

 

성소수자, 만나 보셨나요?

 

성소수자는 동성애자 뿐 만 아니라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르는 말입니다. 이성애자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 성적으로 소외받고 소수인 이들을 칭합니다.

 

얼마 전 기독여민회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신 선생님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연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 편으로는 매번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 걱정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살아가며 느끼는 것을 적자면 할 이야기가 없을까 싶어서, 이렇게 글로나마 멋진 기독인 언니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얼른 하겠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지평을 넓혀가는 좋은 만남이 이어지길 바라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번째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합니다.

저는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작은 인권단체에서 활동합니다. 그리고 매주 기독여민회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주일을 보냅니다. 물론 동성애는 죄!’라고 외치는 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 있다 보면 내가 왜 이 종교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마다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신 분은 바로 주님이었지요. 저는 그렇게 여러분과 같은 신앙을 가진 성소수자들 중 한 명입니다.

성소수자들은 외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게다가 성소수자들끼리만 모여 살지도 않는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소수자, 정말 만나보셨나요...?”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할 때 참가자들에게 꼭 한 번씩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성소수자를 실제로만나본 적은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성소수자들을 마주칩니다. 그저 스쳐 지나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더 가깝게는 함께 학교나 직장에 다니는 동료일지도 모르며, 어떤 경우 친한 친구이거나 가족이나 친척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실제로만나본 적 없다고 느낄 정도로 성소수자는 여전히 꽁꽁 숨어있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누군가 커밍아웃을 해 온다면 어떨까요?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아는 사람에게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랍니다. 하지만 정말 신뢰하고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에게 나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하게 됩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서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커밍아웃은 여러분에게 축복이자 감사할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딸이 커밍아웃을 하시더라도 너무 깜짝 놀라거나 어색해하지 말아주세요. 혹시나 동성애는 죄야. 치유 받을 수 있어. 우리 함께 노력해보자라는 제안을 하시지는 않겠지요? 그저, “나에게 이야기해줘서 정말 고맙고 기뻐. 그 동안 많이 힘들지는 않았니?”라는 말로 시작하면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실제로성소수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성소수자일지도 모른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생활해보시는 것은 어떻겠어요? 바꾸어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당연하게여기는 것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움츠러들거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어색해하고 두려워하거든요. “너 남자친구 있니?”라고 레즈비언에게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너 호모냐? 징그러워~!”라며 동성애자 앞에서 농담을 던진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동성애라는 죄악을 정죄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교회에서 동성애자 기독교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견디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생각보다 괴롭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2년 전의 일이었어요. 기독교에서 주최하는 어느 행사의 뒤풀이 자리에서 저는 한 목사님과 마주앉게 되었습니다. ‘진보진영의 일원이라고 하는 분이었지요. 어쩌다보니 동성애가 대화의 주제가 되었는데 이 목사님이 대뜸 내 딸이 동성애자면 연을 끊겠다웃으면서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앞에 레즈비언이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똑같이 이야기 하시겠습니까?”

 

물론 안타깝게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오랜 동안 굳어 온 그의 편견을 바꾸어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저 또한 엄마와 연이 끊길까봐 무서워서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는 마음 여린 성소수자 가운데 한 명이니까요. 어쨌거나 진보진영의 목사님이라는 그는 연이어 동성결혼은 안된다느니, 양성애자는 기회주의자라느니하는 발언을 멈추지 않았고, 제 마음의 문은 더욱 꽁꽁 닫히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날 마음이 마구 흔들리고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면전에서 나라는 존재를 거부당한 기분이었어요.

물론 여러분 한 명의 변화가 동성애를 조직적으로 혐오하기로 작정한 기독교를 바꾸어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만나는 단 한 명의 성소수자를 온전히 존재하도록 만들 힘은 가지고 있다는 것, 정말 다행이지 않습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하고, 그렇게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사랑은 똑같은 힘을 지니고 무게를 가집니다. 세상의 잣대로 비교하기 전에 마음의 문을 열어젖힌다면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한 가지 색깔로만 칠해져 있던 세상이 아니라, 저마다의 무지개 색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축복이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 여러분이 해야할 일은 의외로 매우 간단합니다.

언제나 내 옆에 성소수자가 있다고 여기고 말과 행동을 할 때 그가 상처받지 않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언젠가 나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할 친구를 위한 자리를 항상 만들어두는 것. 내가 먼저 나는 동성애도 똑같은 사랑의 형태라고 생각해. 나는 내 친구나 가족의 커밍아웃을 지지하고 진심으로 기뻐할 거야.”라고 이야기해보세요. 선물처럼, 그 또는 그녀가 당신에게 진실한 모습으로 다시금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기쁜소식, 2011년 봄호(통권 118)

 

 

만나면 꽃이 된다: 다시 연대를 꿈꾸며

 

기쁜 소식이 가져다 준 기쁜 소식

<기쁜 소식> 지난 호에 첫 번째 글이 실린 후 그걸 한 권 받았답니다. <기쁜 소식>이 가져다준 정말 기쁜 소식 한 가지를 여러분께 전하고 이번 호의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 제 책꽂이에 <기쁜 소식>을 꽂아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함께 일하는 친한 남성 동료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매우 열심히 다닐뿐더러 인권과 평화운동에 관심 많은 진지한 청년이지요. 그는 집에 가려다말고 조심스럽게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동성애자는 소수이겠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중요하지 않느냐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사람에 대한 존중심과 사랑에 대한 소중함이 깊은 사람이어서 언제고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나는 많은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며 꼭 아이의 출산과 양육이 이른바 정상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성애자 부부 중에도 자녀를 낳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동성애자 부부에게서 자녀가 제대로 성장하겠냐는 세간의 의문에 대해 응답하기 위해 이루어진 여러 연구결과들도 그 둘 간에 별반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외부의 시선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지요. 그게 시작이 되어 우리는 집에 가는 길 내내 이와 관련한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할 때 여전히 마음이 두근두근 겁이 납니다만 늘 보는 동료일 경우에는 더욱막상 그와 동성애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게 되고 무엇보다 그가 진지한 태도로 나를 존중하고 있다는 확신이 드니 커밍아웃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공부도 하고 그런 활동도 하는데도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이성애자일거라고 생각하더라구요. 근데 나는 성소수자에요.”

 

선생님, 저는 알고 있었어요. 사실은 책꽂이 꽂혀있는 작은 책자가 있길래 무심코 꺼내서 읽었는데, 성소수자에 대한 선생님 글이 있더군요. 그걸 읽고 놀라서 서둘러 다시 꽂아놓았지만

 

기쁜 소식이라는 소책자 말이에요? 기독여민회에서 펴낸거요? 아하, 그걸 읽었구나! 생각도 못했는데!”

 

네 맞아요! 그 책이에요!”

 

그 글은 마침 성소수자와 공존하고 존중하는 법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읽고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내게 말을 걸어준 그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가 나의 커밍아웃 이후로 더 가까워졌고 속내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동성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면서 우리가 이런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새로운 만남을 기회로 삼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생각보다 다양한 성이 있고, 사람이 있고, 동시에 누구나 이해 받을 만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만나면 그렇게 낯설 것도 없으며 어떨 때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동성애를 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터무니없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하지요.

물론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와 나 사이에 벽을 허물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어쩌면 정체성을 넘어선 입장의 동일함때문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우선 한국 교회의 개탄스런 현실에 대해 통감했으며,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실천이 필요함에 공감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부산 영도의 85호 크레인에 홀로 올라가 200일 가까이 투쟁하는 한 여성 노동자와 삶의 낭떠러지로 내몰린 해고노동자들의 절규에 대해 참담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진정 기쁜 소식입니다.

 

그것이 연대

그렇습니다. 성소수자들은 지난 79일 한 대의 성소수자 전용 버스를 만들었습니다. 아니,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희망의 버스에 성소수자들이 꼭 함께 내려가기를 바라는 비성소수자들도 함께 그 버스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퀴어버스였습니다. 2차 희망의 버스에는 60명 가까이 되는 성소수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길고 긴 버스 탑승 시간과 그칠 줄 모르는 폭우 속에 도착한 부산역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모두가 희망의 버스를 타고 온, 오로지 85호 크레인을 지키고 해고된 노동자들이 다시 일할 수 있게끔 하려고 그 이유 하나로 달려온 만 여명의 사람들이 부산역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저도 어쩐지 뭉클한 마음으로 우비를 단단히 고쳐입고 성소수자의 상징은 무지개 깃발을 꺼내들었습니다. 깃발의 용도는 퀴어버스 참가단을 찾는 성소수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정의를 위한 투쟁에 성소수자들이 언제나 함께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도 있었습니다. 물에 푹 젖었지만 간간이 날리는 깃발을 보며 폭우를 뚫고 영도까지 무사히 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85호 크레인을 바라보는 만 명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순간 앞에서는 형광물질이 마구 발사되었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그래도 집회 대열을 이탈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자신이 그 곳을 지켜야 한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지요. 또 다시 멀리까지 최루액이 발사되자 우리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최루액에 맞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눈을 감싸쥐고 뛰어가고 온 몸이 불에 데인 듯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우리는 황급히 가진 물통을 모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부어주고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평소에는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느껴졌던 동성애와 이성애 사이가, 85호 크레인을 앞에 두고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는 참으로 무용한 구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무지개 깃발에는 동성애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음에도 성소수자의 존재가 문제가 된 적은, 12일 동안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로 옆에서 함께 같은 구호를 외치고, 생수병을 건네준 사람이 게이인지 아닌지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문제될 것 없었다는 말입니다.

밤이 깊고 새벽이 다가오면서 장대비와 최루액, 행진과 대치 상황에 지친 사람들 속에서 하나둘 노래소리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무리가 남성동성애자인권단체인 친구사이의 게이코러스가 둘러앉아 부르는 노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행진 때에도 멋진 화음으로 노래를 불러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게이코러스의 합창은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이 되주었음은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동이 트고 오전이 되자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85호크레인으로 다가갈 수 없었지만, 항의를 위해 경찰들이 둘러친 차벽 아래서 장애인 활동가들과 함께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름 없던 사람들, 보이지 않던 사람들, 거리에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이 희망버스가 만들어낸 이 공간에서 모두가 평등했으며 심지어 가장 앞장선 사람들이 되기도 했습니다. 별 것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 ‘소수자들에게는 뜨거운 연대의 순간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기억됩니다.

결국 우리는 85호크레인 앞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소중히 만든 무지개 바람개비와 성소수자의 염원을 담은 플랑카드를 직접 걸어둘 수 없었지만 12일을 마무리하는 정리집회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은 우리를 충분히 감동케 했습니다. 그녀는, 세심하게도, 장애인, 성적소수자, 이주민들. 소수자들이 이 투쟁에 함께하여서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제 이름으로 불리우고, 제 모습으로 서는 순간, 저마다 이 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는 꽃이다, 라는 희망버스와 한진중공업 투쟁의 절절한 외침과 마찬가지로요.

저는 그것을 연대라고 부르겠습니다. 연대는 무겁고 가벼운 것과 중하고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저의 대학원 동료가 나의 커밍아웃을 존중하고 나의 입장과 정체성에 지지를 보낸 것 또한 연대입니다. 그리고 희망버스에서 겪었던 것들 또한 연대입니다. 연대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연대는 그저 입장을 바꿔볼 줄 아는 감수성불의에 대한 공통된 감각만 지녔다면 충분한 실천입니다. 하지만 연대가 지닌 힘은 엄청납니다.

이 세상은 모든 걸 조각조각 쪼개어 우리가 서로 반목하도록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적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적대, 노숙인과 집 있는 자의 적대, 이주민과 내국인의 적대 등이 그렇지요. 하지만 다시 곱씹어보면 이들은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지녔거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사회적 불의는 이런 사람들 누구에게나 행해지며, 재벌과 썩은 정치인들의 경제적 착취와 탄압, 전쟁의 문제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불의에 대해 공정히 분노할 수 있는 건강한 감각은 차별의 장벽을 넘어 연대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그럴 때만이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거듭납니다.

연대는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약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가장, 우선, 필요한 것입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200285호 크레인 위에서 유명을 달리한 김주익 지회장을 추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연대의 소중함입니다. 그리고 연대는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무엇에게나 평등한 것이어야 합니다. 7월 마지막 주말, 다시 한번 희망의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성소수자들도 어김없이 퀴어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밤을 새어 무지개 찬란한 희망의 버스 퀼트를 만들어서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연대는 만남입니다. 만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됩니다. 연대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기쁜소식, 2011년 가을호(통권 119)

 

 

 

예수님은,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 기적을 일구었던 서울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를 위한 성소수자 농성장에서

 

예수님은 정말 어디에 계실까? 정말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오실까? 예수님은 정죄하지 않으실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에 대해 많은 물음표를 가지고 살았다. 신앙에 의심이 들 때면 그 분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시험이라는 어떤 성직자의 말을 되새기기도 했지만, 동성애자라는 나의 성정체성과 동성애를 큰 죄로 여기는 한국 기독교는 오랜 시간 화해할 수 없었다.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지 몇 년쯤 된 지금도 때로 나는 신앙을 의심한다. 정말로 어쩔 수 없다.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눈에 띄게는 차별금지법안 제정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되었던 2007년 말부터 우파 기독교의 동성애혐오는 더욱 노골화되었다. 물론 우파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상당한 사람들은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나름 진보적이라 하는 기독교인들조차 동성애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정도의 인식을 벗어나기 힘들다. 어쨌거나 동성애 혐오 나팔수 노릇을 하는 이들은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기본법인 차별금지법안을 동성애옹호법이라고 호도하고(물론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지만 말이다), 동성애를 인정하면 사회가 붕괴하고, 에이즈가 창궐하며, 청소년 사이에 동성애가 전염된다는 해괴한 논리를 퍼뜨려댔다. 과학자와 변호사 등이 마치 과학적으로, 법적으로, 때로는 사회심리학적으로 동성애가 모종의 병적 징후임을 입증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기독교 교리가 뒷받침되었다.

그들이 판단하기에 우울하고 사회악인 동성애자로서의 나에게는 내가 계속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케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집회를 열면 기독교인인 그들이 찾아와 불지옥 그림을 들이대며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저주를 퍼부었고, 내 팔을 붙잡고 어머니께 죄송하지도 않냐며 훈계를 했다. 어느 날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문자가 와서 동성애를 계속하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난 날이면 마음은 무척 어두워졌다.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정말 신의 존재를 의심케 하는 사람들이었다. 동성애자로서의 내가 세상에서 살아갈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기분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차별금지법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기독교인이라 자신을 칭한 사람들은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교가 동성애자 천국이 되고 임신과 자유로운 성관계를 조장해서 초등학생 엄마, 아빠가 늘어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사실 그들은 청소년과 학생들에게인권자체를 허용할 생각이 없으면서 겉으로는 마치 학생인권조례를 막아야지만 동성애로부터, 학교 폭력으로부터 대다수의 양순한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사회에서 기독교가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잘 훈련되고 통제에 순종하는 학생들을 양성하여 억압적인 사회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는 것은 정말로 우울한 일이었다. 그리고 성소수자들은 기독교인들의 압박이 극심해진 나머지, 학생인권조례안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삭제되는 위기 속에서 서울시의회 점거 농성에 돌입하게 되었다.

1213일 서울시의회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다시 질문했다.

 

정말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성소수자들이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요구를 걸고 싸운 것은 어쩌면 이 서울학생인권조례 농성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차별금지사유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삭제된다는 것은 우리 존재가 삭제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절박한 문제였다. 우리는 과연 언제가 되어야 정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정말 두려웠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대로 투쟁에 패배하여 삭제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크게 실망하게 될까? 얼마나 깊숙한 벽장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할까? 그리고 기독교인으로 일컬어지는 저들은 동성애자들을 물리쳤다며 얼마나 더한 독설과 광기를 뿜어낼까?

농성장에서는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첫 번째로는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사람들이 농성장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집회에서 성소수자들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본 사람들, 철거민들, 한진과 쌍용차의 노동자들, 기륭의 여성 노동자들, 우리와 같은 처지의 장기농성 중인 활동가들, 정말로 다양한 이들이 연대하러 농성장에 찾아오고 함께 밤을 지샜다. 덕분에 날이 갈수록 농성장은 사람들로 더욱 북적거렸다. 차별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 잘은 몰라도 함께 싸워봐서 힘을 보태주어야 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 드는 이 공간은 우리에게 더욱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예수님이 계시다면 아마 이런 사람들 사이에 계실 것이라고, 아마 우리들 사이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춤추고 있을 것이라고, 떠들썩한 농성장 문화제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두 번째 사건은 몹시 참담한 경험인데, ‘기독교인이라 칭해지는 그들이 오전마다 찾아와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들 앞에서 멸시어린 시선과 폭력적인 언사들로 우리를 모욕한 시간들이다. 우리는 당시 저런 사람들의 언행에 대응하지 말자는 계획을 세웠다. 괜히 맞섰다가 사태가 커지면 농성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성참가자들은 그런 폭언을 견디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분함에 이를 바득바득 갈기도 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 정체성이 갉아먹히는 듯한 그 느낌이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를 더러운 것 보듯 곁눈질로 흘끗거리며, 호모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해댔다.

 

너는 질병, 비정상, 제정신이 아닌, 항문성교하는, 자자손손 세상을 망하게 할 동성애자야. 어서 우리들 세상에서 사라져. 없어져버려. 죽어버려.”

 

그들은 정확히 그렇게 주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없어져버린, 이 세상에서는 영영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친구들이 있다. 다시 묻고 또 물었다. 십자가를 들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가를 부르는 저들 앞에서, 예수님은 계십니까? 당신은 우리의 친구입니까?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찬송가는 과연 있는 것입니까? 그런 흔들림 속에서 학생인권조례제정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마음이 힘들었던 때는 아마도 학생인권조례안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 명시되지 않은 채로 제정될 것이 확실시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을 때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세 번째 사건은 바로 그 날의 일이다. 농성장에는 학생인권조례안이 훼손되어 통과될 것이라는 것이 확실시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많은 청소년들, 성소수자들, 인권활동가들이 1년 가까운 제정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허탈함과 동시에 성소수자들로서는 자신의 존재가 삭제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들었다. 다들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울었다. 한 번도 힘을 가져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고 세상의 벽을 넘기 위해 분투한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그러한 것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 예수님은 참 무정한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금요일이었고, 그 날은 몇몇 기독교인들이 준비한 기독인 900여명의 서울학생인권조례 지지 선언이 발표된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 저녁 농성장에서 조촐한 기도회를 열었다.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회였다.

늦은 저녁 농성장의 차가운 바닥 위에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았고, 또 스무 명 가량의 사람들은 그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며 노래도 부르고 기도도 했다. 목사님은 기도하다 말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목사인 것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여 울었고,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울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냥 울고 싶어 울었다. 예수님이 따라서 울고 계신 것 같았다. 어쩌면 저기서 또 눈물을 훔치고 있는 청소년들 사이에 앉아서 말이다. 울다 기도하고, 기도하다 울고, 노래하다 울고 하면서 기도회가 끝났다. 나는 농성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곳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스러워하거나, 울기도 하면서, 때로는 만두를 나누어 먹으며 수다도 떨면서 계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는 이 시간이 진정 힘이 되었다. 그리고 농성장을 지켰던 적지 않은 성소수자 기독교인들(교회가 버린 사람들이다)도 나와 비슷한 위로를 받았다 했다.

사실 농성장에는 내가 다니는 성문밖교회 목사님과 교우들도 찾아오고, 성공회 신자들, 개신교 신자들을 비롯해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찾아왔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부단히 실천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신의 사랑을 의심하면서도 또 의심을 거둘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여곡절을 거쳐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서울시의회에서 당당히 통과되었고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사랑과 실천의 경험이,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두려워마라.

용기를 내라.

그 날의 기도회에서 우리는 이 말들을 계속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예수님은 이미 우리들 사이에 계셨다.

 

기쁜소식, 2012년 봄호(통권 120)

 

 

열아홉 동성애자, 내 친구 육우당의 10주기에 부쳐

- 그의 죽음 앞에 진심으로 뉘우치는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이 세상은 아비규환인 것 같습니다. ,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 이 여섯 가지가 제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육우당이죠.”

육우당. 아마 성소수자들이거나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두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여전히 그의 실명을 밝히지 못한 채 육우당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던 그의 아호를 세상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는 내 친구이자 동지인 스무살의 동성애자 청년 육우당이다. 그는 10년 전 425일에 내가 활동하는 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문고리에 목을 매고 세상을 등졌다. 다음날인 2003426, 동료활동가의 전화가 빗발쳤다. 나는 일하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었지만 뜻모를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가 죽었나......?”

 

서둘러 도리질을 치면서도 어째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이것이 근거없는 추측에 지나지 않길 바랐지만, 청량리 경찰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수십 분 후 나는 망연자실하여 경찰서 책상 앞에 형사와 마주 앉아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나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왜 죽었는지, 왜 여기서 죽었는지, 왜 그런 유서들을 써놓았는지. 그리고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누나, 이 노래 들어봐요.”

나 약속 늦었어~ 내일 들어볼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 노래를 듣지 못했다. 그가 들려주는 노래를 차분히 들어볼 기회도 가지지 못한 채 십년이 흘러 나는 서른 다섯이 되었고 그는 서른이 되었어야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열아홉에 동인련에 와서 스무살에 멈추어 있다. 그가 사무실에서 가버린 탓에 우린 도망치듯 컴퓨터 한 대만 들고 동료 활동가의 집으로 옮겨갔다. 그가 죽은 지 이틀 후 나는 혼자 피시방에 앉아 경과보고를 작성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경과를 기록한 그 글은 내 평생 가장 쓰기 힘든 글로 남았다.

그의 빈소는 썰렁했다. 고등학교 때 자의반 타의반 학교를 나와야 했으며, 게이였고,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어떤 미래도 감히 생각하기 힘든 채 스무살이 되어버렸던 한 청년의 마지막 길은 가십거리를 찾아 쫓아온 몇 명의 기자들과 비통한 마음으로 자리를 지킨 많지 않은 성소수자 친구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독실한 천주교인이었지만 천주교 교리에 따라 장례미사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

 

내 장례를 천주교식으로 해주세요. 난 천주교를 사랑합니다.”

 

그는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다행히 육우당이 알던 한 신부님이 개인적으로찾아와 성소수자 친구들과 함께 장례미사를 드렸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입맛이 썼다. 동인련에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을 들고 와서는 하느님이 동성애자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 했던 동성애자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인들이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활동하던 2003년 봄,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자 차별조항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성소수자 단체들이 오랫동안 싸워온 것이니만큼 기쁨도 컸지만, 곧이어 한기총이 동성애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저주와 유황불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동성애자들이 가족과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동성애혐오 발언들을 마구 퍼부어댄 것이다. 육우당은 이 일에 크게 분노하고 비통해했다. 그는 끊임없이 하느님이 동성애자를 사랑하시며 회개해야할 것은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이라고 했다. 그는 열정적으로 성소수자가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외쳤고 열심히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도 했다.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 성경적, () 인류적인지

 

그는 긴 유서의 마지막에 그렇게 쓰고 갔다. 우리는 한기총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의 죽음에 한기총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더러 부끄러운 줄 알라며 되려 호통을 쳤다. 기독교인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육우당이 전부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인 청소년들을 고친다며 머리에 구멍을 뚫어 전기충격을 주었고, 정신병원에 가두었으며, 구타하고, 모멸감을 안기고, 급기야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은 젊은 동성애자들은 골방에서 스스로 세상과 이별했다.

이 끔찍한 일들에 적어도 기독교인들은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사랑의 하나님이 동성애자들에게 같은 사랑을 주시지 않는다고, 누가 멋대로 판단할 수 있는가. 나는 육우당 이후 완전히 교회를 등졌다. 도무지 분노스러워서 교회 앞으로도 지나가지 않았다. 나를 벌레처럼 쳐다보던 한기총 목사들의 눈빛에서,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찾을 수 없었다.

육우당은 책상 위에 자신의 일기장과 습작시집을 몇 권씩이나 두고 떠났다. 그의 기록들이 너무 무거워 감히 펼쳐볼 생각도 못하던 나는, 그가 떠난 지 몇 년이 지나고 그의 기록을 엮어 유고시집으로 펴낸 다음에야 그것들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나는 울고, 울기를 그치고, 또 울음을 삼키고 하며 그를 다시 만나보았다. 그는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야기

 

가식적인 십자가를 쥐고

목사들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우리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발악하고

 

만일 우리가 떨어진다면

예수님이 구해 주시겠지

 

창녀와 앉은뱅이에게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보여 주시겠지

 

푹신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사랑을.

 

- 육우당 추모시집 내 혼은 꽃비 되어.

 

그는 끝까지 신의 한없는 사랑을 확신하고 있던 것이다. 그의 죽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청년들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들은 한기연 소속의 기독 청년들이라 했다. 이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 드리며 회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개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한 동성애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비극 앞에서 이들은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른 길로 돌아섰다. 동성애자들에게 푹신한 솜이불 같은 사랑을 주시는 신의 길을 좇아서, 동성애자들과 손을 잡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난 이 청년들을 통해 회개하는 기독교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흘렀다. 지난 3월 어느 날 나는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며 모였다는 사람들의 집회에 가보았다. 평일 오전임에도 400여명이나 모인 그들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와 에이즈가 창궐하는 세상이 되고 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모두 무너질 것이며 청소년들이 동성애에 전염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마구 해댔다. 이윽고 동성애자라는 표찰을 걸고 몸을 배배 꼬며 나와서 이른바 동성애자 시늉을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는 실컷 야유와 조롱을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란 말인가! 나는 그 순간 엄청난 두려움과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다. 그들이 날 해꼬지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그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구나, 라는 모멸감. 이것이 차별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돌아오는 길, 나는 몸을 움츠리고 육우당을 떠올렸다.

십년이 흘렀지만, 이 기독교인들은 결코 회개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육우당이 지금도 이름 없이, 이유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유황불 지옥을 들이대고, 저주를 퍼붓는 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십년이 흐른 지금, 굳이 육우당을 다시 기억하기 위한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의 기일인 2013425일 저녁에는 한기연, 천주교 인권위원회,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 연대 그리고 성소수자 기독인들과 함께 추모 기도회를 열고 이름 없이 죽어간 성소수자들을 기억할 것이다. 427일에는 동성애혐오 없는 세상을 위한 추모 문화제를 대한문에서 열 것이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우리 세상의 역사이자 살아있는 현실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나는 몇 년 전 동성애혐오를 중단할 것을 이야기하는 신문광고 모금을 받으러 돌아다닌 적이 있다. 한 여성운동가는 내게 동성애자가 차별받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두 가지가 구분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마 기독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녀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기독교인들 스스로 자기 자신이 얼마만큼 기독교의 동성애 혐오 조장으로부터 자유로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관용은 오히려 쉽다. 관용의 원뜻은 참아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관용은 성찰의 힘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관용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혐오와 편견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성찰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은 어떤 기독교인인가? 당신은 육우당이라는 하느님의 자녀가 기독교의 독선과 오만에 못 이겨 죽음을 택한 이 무거운 현실 앞에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기독교인들이 이 무고한 젊은 영혼들의 죽음 앞에 회개하는 길은 이들과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길 밖에 없다고 늘 생각한다. 우리의 존재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존중하며, 끔찍한 혐오를 조장하는 기독교의 독선 앞에 가장 먼저 눈물 흘리며 자신을 고백할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425일 목요일 오후 7시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성소수자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기도회가 열린다. 이틀 뒤인 27일 토요일 오후 7시에는 대한문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혐오가 없는 세상을 외칠 것이다.

그 곳에서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쁜소식, 2013년 봄/여름호(통권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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