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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긴다

 

오 은 지

(도서출판 한티재 대표, 성소수자부모모임)

 

딸에서 아들로

저는 만 스무 살이 된 트랜스젠더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올해(2018) 223, 대구가정법원에서 작은아이의 성별정정을 허가한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혀 있는 아이의 성별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정된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아이의 성별정정을 위해 애써준 많은 분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기쁜 소식을 전하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성별정정을 신청하는 경우 비교적 신청이 잘 받아들여지는 서울로 주소지를 옮기는데, 저희 아이는 사는 곳인 대구에서 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렵겠지만 대구에서 성별정정을 하는 과정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주변의 인식을 바꾸는 기회가 되고, 만약 성별정정이 된다면 좋은 선례가 되어 대구에 사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 저희 가족의 뜻에 공감하여 희망을만드는법(공익인권변호사모임) 변호사님들이 함께해주셨습니다.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성별정정을 위해서는 십여 가지의 서류가 필요합니다. 거기에 필수 서류는 아니지만 친족, 친구, 지인의 진술서(탄원서)를 받아서 함께 제출하면 판사가 성별정정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된다고 합니다. 성별정정 허가가 잘 나오지 않던 대구가정법원이라 무엇보다 지인들의 진술서를 많이 모아서 내는 것이 좋겠다는 변호사님들의 조언에 따라, 저희 부부는 많은 지인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진술서는 보통의 탄원서처럼 미리 작성된 내용에 서명만 하는 방식이 아니라,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신청인을 지켜본 진술인 각자의 이야기를 써야 하고, 도장이나 지장을 직접 찍어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난히 무덥던 작년 여름, 많은 분들이 진술서를 써주셨습니다. 손으로 정성껏 써서 등기우편으로 보내온 다섯 장에 이르는 편지도 있었고, 주변의 지인과 이웃들의 진술서까지 모아 건네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달려와 손에 쥐어주고는 급히 가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 진술서들을 한 장 한 장 읽으며,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이렇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까 감사하며, 오래 기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성별정정 허가 소식을 들은 다음날은 그 한 분 한 분께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답장들이 가득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아이의 성별정정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1,200명이 넘는 분들이 공감해 주고, 축하한다는 댓글이 120여 개가 달렸습니다. 160여 회 공유된 그 글을 보고, 인터뷰하자는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커밍아웃과 트랜지션

둘째 아이가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한 것은 열여덟 살이던 2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던 것은, 저나 제 남편이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고, 그들을 차별하거나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대구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면 퍼레이드에 참가도 하고,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가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엄마 아빠와 지내왔으면서도 커밍아웃을 망설였고 심지어 평생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했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더 놀랍고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의 어려움을 속속들이 알고 내 것처럼 느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커밍아웃을 받았지만, 저희 부부는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트랜지션을 위한 수술은 성인이 된 후에 천천히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에는 의료적인 처치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염려 등과 더불어 혹시나 하는 마음도 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커밍아웃을 받아줬으니 됐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가족들이 지내고 있는 동안 아이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합격한 대학도 포기하고, 재수도 포기했습니다. 우울증은 더 심해지고, 한여름에도 가슴을 압박붕대로 동여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말했습니다. “엄마, 난 붕대로 동여맨 가슴 때문에 숨 쉬기도 힘들어요.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더워서 죽을 것 같아요.”

당장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또 한번 아이의 고통과 처지를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다는 걸 깨닫고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해 겨울 가슴제거수술을 하고, 다음해 봄 자궁적출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성별정정신청을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다고 했고, 그러기 위해 자궁적출수술도 미룰 수 없었습니다.

 

직접 만나게 된 성소수자들

커밍아웃을 하고 난 뒤 아이는 저에게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나가 보기를 권했습니다. 20168, 서울에서 열리는 정기모임에 찾아갔습니다. 몇 명의 엄마들이 모여 있을 거라 상상했는데, 막상 가보니 부모들과 성소수자 당사자들 사십여 명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몇 겹으로 의자를 놓고 촘촘히 둘러앉았는데, 나중에 온 이들은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 앉기도 했습니다. 부모들은 십여 명 정도 되었고 당사자들이 훨씬 많아서 놀랐습니다.

그날 저는 말로만 들어보았던 성소수자들을 한꺼번에 만났습니다. 아이의 커밍아웃 후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온 부모들의 소개에 이어, 당사자들의 자기 소개에서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라는 말들이 연이어 들렸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이지만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과 사연을 고백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이 성소수자인 자녀가 이해되지 않아 하소연하고, 자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을 토로하면,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그런 처지에 있는 성소수자 당사자가 자기 경험과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부모들이 갖고 있던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아 주기도 했고, 그들이 겪어온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모두들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평범한 모습은 우리 주위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가 얼마나 많은지 조용히 증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두 번만 참석해보려고 했던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저는 어느새 매달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부모님들과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고맙고 보고 싶고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무엇이든 돕고 함께하고 싶어졌습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부모모임은 2014년 어머니들 두세 분의 작은 만남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처지의 부모를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어머니들이 힘들게 모임을 이어 왔습니다. 인원이 많든 적든 매달 꾸준히 만나 왔고, 이제는 매달 두 번째 토요일에 하는 정기모임에 50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서울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찾아오고 제주도에서 오기도 합니다. 정기모임에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나 당사자뿐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소수자 당사자나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려는 분들, 성소수자 관련 내용을 취재하려는 언론인,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종종 참석합니다.

부모모임에는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도 많이 옵니다. 대개 아이의 갑작스런 커밍아웃이나 우연히 아이의 정체성을 알고 충격을 받은 부모, 또는 부모님과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소수자 당사자가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입니다. 그러면 실무자나 부모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어머니들이 통화를 하고, 전문가에게 연결해 드리기도 합니다. 통화를 한 후 이해하고 안심하는 부모님도 있고 정기모임에 나오겠다고 약속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경우는 모두들 안타까워합니다.

평균 한 달에 열 번 넘게 이런 상담 전화가 오는 것을 보면, 성소수자들이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의 존재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와 가족에게 하는 커밍아웃이 성소수자들에게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 일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정기모임과 상담 외에 여러 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퀴어문화축제에도 참가합니다. 성소수자부모모임 부스를 운영하고, ‘성소수자부모모임이라는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고 퍼레이드 행진에도 참여합니다. 축제 중에 어머니들이 프리허그를 하면, 많은 성소수자들이 와서 어머니들에게 안깁니다.

저는 늘 쑥스러워서 부스를 지켰는데, 지난달 부산퀴어문화축제에서는 처음으로 프리허그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아이가 직접 그려서 갖고 간 “LOVE WINS”라고 쓴 무지개색 피켓을 들고 프리허그를 했습니다. 멀리서 망설이다 달려오기도 하고, 활짝 웃으며 즐겁게 포옹하기도 하고, 프리허그를 하고서는 금세 눈물이 글썽글썽해지기도 하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을 꼭 안아주면서, 서로의 따뜻한 온기를 피부와 숨결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위로해주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사자들은 바로 자신의 부모님과 그런 따뜻한 포옹을 바라는 것이겠지요.

 

세상에 대한 커밍아웃, 커밍아웃 스토리

그동안 성소수자들과 가족들의 다양한 사연을 접하면서 부모모임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성소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리고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걸 알게 되어 당황한 부모,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려고 고민하거나 부모님과 갈등을 겪고 있는 성소수자, 자신의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알게 되면서 두려움과 자책감에 빠진 청소년이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성소수자는 내 주위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바로 당신 곁에 성소수자가 있음을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커밍아웃 스토리에는 열두 명의 부모와 열네 명의 성소수자들이 쓴 글이 실려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인 저는 이 책의 편집을 맡아 진행했고,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스물여섯 명의 저자 모두 약속한 날짜를 지키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글을 써보지 않았던 분들도 있고 생업으로 바쁜 분들도 많았지만, 편집자의 이런저런 요구들에 최선을 다해 주었습니다.

책에 실린 이야기에는 해피엔딩만 있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커밍아웃을 잘 받아들인 경우도 있지만, 커밍아웃을 망설이고 있거나 뜻하지 않은 아우팅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했으나 가족들이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겪었던 절망감과 슬픔을 차분히 써내려간 글도 있습니다. 아픈 일을 다시 떠올려 글로 옮기는 어려운 일을 해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다시 마음이 아프고 또 감사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는 글을 쓴 부모와 성소수자 당사자뿐 아니라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책을 출간하기 위한 펀딩에 560여 분이 참여했고, 김승섭, 이지하, 홍성수 교수님이 책에 실을 글을 써주셨습니다. 북디자이너는 책에 가장 어울리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해주었고, 성소수자 당사자분들이 내용에 오류가 없는지 검토해 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모아 만든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리라 믿습니다.

 

평범한 이웃들이 주는 희망

아이가 성소수자임을 알고 난 후 저희 가족은 성소수자의 부모로서, 가족으로서 각자가 해 나가야 할 커밍아웃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친정 부모님과 형제에게, 오랜 친구와 지인들에게, 명절 때면 보게 되는 친척들에게, 자주 만나는 이웃에게…….

특히 친정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릴지 오래 망설였습니다. 멀리 사는 딸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만을 바라시는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는 건 아닐까, 성소수자라는 것을 과연 이해하실까, 손녀가 손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실까, 온갖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가 찾아뵙고 말씀드렸을 때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살아야지, 그게 제일 중요하지.”

대부분의 지인들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따뜻하게 위로하며 지지해 주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퀴어문화축제 같은 데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하던 지인조차 저희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동안 미안했다고, 자신이 너무 무지했다고 손을 꼭 잡았습니다. 나랑 상관없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친구와 이웃의 이야기일 때 견고한 편견의 벽도 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저희 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성당 성가대 단원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든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든 저와 남편은 성소수자의 부모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합니다. 아이의 성별정정 소식이나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을 보고 요청이 오는 인터뷰도 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자기와 같은 성소수자가 주위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겠다는 아이의 의지와 용기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아이와 저희 가족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들에게도 자주 커밍아웃합니다. 가족들이 다니는 동네 내과, 아이가 다니는 학원과 운동센터, 종종 가는 약국에서도 커밍아웃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이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갖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과 혐오가 넘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웃과 친구들이 저희 가족에게 전해준 따뜻한 마음, 많은 분들이 성소수자부모모임에 보내온 우정과 연대는 사랑이 편견과 혐오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아이가 무지개 색깔로 정성껏 그린 피켓에 썼던 말, ‘LOVE WINS’. 아이의 바람처럼 사랑은 혐오와 미움을 이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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